춘원 (春園) 의 <원효대사>를 읽다가 다음 대목에서 눈길이 못박혀 버린일이 기억난다.
<원효는 화엄경(華嚴經)을 잘 안다. 그러나 화엄경이 되어 버리지 못하였음을 느꼈다.> 모르고 행한 일이면 그 정상이
참작되는게 세상 법률이지만 불가(佛家)에서는 모르는 것을 탐욕·화냄과 더불어 삼독 (三毒)으로 여겨 영영 구제 받을 수
없는 것중의 하나인 무명 (無明) 으로 규정해 그것은 악 (惡) 이요 독 (毒)으로 본다.
어쨌거나 모른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인간사 중에서 교육이 대사 (大事) 중의 대사로 꼽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튼 알기란 어려운 일이고 안다는 것 그것만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페스탈로치>는 <재주와 지식만을 양성하면 도리어 사회의 독소가 될 수 있으므로 모든 배움의 근본을 단정한 심지의
밭을 일구는데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정한 심지의 밭을 일군다 함은 아는 것 그대로가 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작금의 교육이 아는 것을 얻는데 치우치고 있다면 이는 필자의 편견일까?
맞는 것과 틀린 것을 잘 가려내면 우수한 자로 대접 받고 피상적이며 단편적인 지식을 많이 기억하고 있으면 왠만한
시험에 척척 붙어서 우대를 받고 이런것을 목표로 교육이 펼쳐질 바에야 학교대신 차라리 로보트 공장을 차곡차곡
지어가는 것이 지름길이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교육속에도 절차탁마가 있고 발전이 있지만 그 정도로는 본인 욕심의 한이 차지 않아서 해보는 소리다.
설혹 어렵더라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되는 것에까지 이르도록 힘을 더 기울여 보자는 뜻이다.
<사르트르>의 황홀한 산문 <구토>에는 도서관에서 매일 마주치는 한사람의 늙은 독학자가 나온다. 그는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알파베트 순으로 읽어 내려가는 무서운 편집광이다. 그는 지식만을 추구해가는 현대인의 최면적으로 병든
소유욕을 잘 상징하고 있다.
단정한 심지의 밭이 갈수록 황폐해 지고 물질의 힘이 사람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이 자꾸 두드러지는데 교육까지 아는
것을 얻기에 급급하여 그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조바심이 쳐진다.
<원효는 화엄경을 잘 안다. 그러나 화엄경이 되어 버리지 못했음을 느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이 글귀를 놓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 참 뜻을 되새겨 보아야만 할 것 같다.
체육학과 교수 송은섭
우석대학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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