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과 그름 온갖 시비 장단의 상대적 가치를 초월한 개념을 의식치 않고
살아가는 경우, 실로 우리 사부대중 모두가 착각의 환영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해서 그 환영속에서 인간 스스로가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시간이라는 쳋바퀴에 하루하루의 자취를
그리며 또 지워가고 하지만 과연 추구한 바 어느길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이련가
자고 이래로 참 마음은 한없는 침묵속에 여여히 허공을 지키고
있건만 변화라는 현상에 엀매인 사부대중은 긍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잊어가고만 있다
흔히 일생일대의 삶을 쌀찌울 최선의 지표를 찾고 있지만 실로 그것 모두가 미혹한 자신들이 만들어낸
착각의 테두리에 드는것은 아닐런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땐 무언가를 찾아가는 우리내의 발걸음은 한없이 부질없기만 하고 그래서
각자 참된 지표를 찾겠다고 바둥거리지만 모두가 허무의지로 곧 허탈만을 느끼게 되고 그 허무의지를
색연필로 각자의 종교상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그 또한 바탕이 허무의지이기에 어쩔 수 없이 허무하다.
실로 만물은 변화의 상으로 만무하다
어느것 하나 변하지 않는 상은 없다
변하는 것은 부질없기에 또한 상도 부질없다.
그러기에 모든 상을 여윈것은 진실하다 할 수 있다면 우리 본래의 마음에 상이 있는가 없는가
원래 허공과 같은 것이리라. 허공이 하나에서 원래 허공과 같은 것이리라.
본래 허공과 같고 없는 것이라면 그럼 무엇이, 있길래 생각마다 우린 막연하고 극단적인 벽에 부딪치는 것일까
본래 무명을 만들고 어둡게 흐리게 하는 것으로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에 삼독의 번뇌가 있어 항상 태양을 가리는
구름격으로 이 무명을 제거하지 않는한 각자가 어느 종교를 가진다 하여도 과연 그것이 올바른 것이 될수는 없다.
높이 떠오르는 태양은 구름에 가려 숨박꼭질 하는 듯 하지만 태양은 거침없이 빛을 부어대고 있지 않는가
그저 늘 변하여 부질없는 것에 매달리어 사는
생을 미혹한 삶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껍대기인가? 알맹이 인가?
주체인가? 비주체인가?
어쩌면 우리는 또 하나의 망녕들을 진실화 해놓고 사는지도 모른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해서 다부지게 장담하지만 안이비설신의 는 보다
거기에 실다움은 없는 것이요
일찌기 원효가 해골물로 깨우쳤다는게 모두 이것은 아닐런지
본래의 마음 성품이 인정한거라는 모두가 이것이 아닐런지
원효의 가르침이 정녕 안온함을 느끼웁게 하는대
한발을 땅에 딛고 있어 현실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또한 한발은 구름위 허공을 두어 변화라는 현실의 매이지 않고
꼭 걸림이 없는 모습으로 스스로가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의 길을 찾아야겠다.